역사관

  • 1904 - 1910

    초창기

    한국에 재림교인이 등장한 것은 1904년이었다. 하와이 이민을 위해 일본 코베에서 머물던 이응현과 손흥조가코베 안식일교회의 전도사인 쿠니야히데에게 재림교회 기별을 듣고 그해 6월에 침례를 받아 최초의 한국 재림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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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 - 1919

    선교기

    한국미션 제1회 연회가 1910년 8월에 서울에서 대총회 부회장인 에반스 목사와 일본미션 감독인 필드 목사의 지도 아래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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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 - 1930

    확장기

    1919년 3월 1일에 한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만세 시위가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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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 - 1938

    성숙기

    1917년에 의명학교에 개설된 2년제 신학과는 운영상의 문제로 1922년에 문을 닫고 통신학교 형태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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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 - 1945

    수난기

    1939년 1월에 개최된 원동지회 총회에서 조선합회 감독이었던 오버그 목사가 일본합회 서기 겸 회계로 전임되었고, 왓츠 목사가 조선합회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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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 - 1954

    재건기

    서울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끌었던 두 목사(이성옥, 김석영)가 해방 직후인 8월 17일에 서울 청진동교회를 청소한 후, 다음 날 안식일에 안식일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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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 - 1965

    약진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교회의 피해 상황을 복구하고 재건의 시기를 보낸 한국 재림교회는 1956년 들어서서 경제적 자립과 본방인 중심의 지도력을 확대하는 등 자급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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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 - 1978

    변혁기

    1966년 7월 <교회지남>에는 1만5천 명이 안교생수가 감소한 사실에 대한 우려와 각성을 호소하는 글이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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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 - 1990

    자양기

    1978년 3월 15일에 서울위생병원교회에서 중한대회 제24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총회의 핵심 의제는 중한대회를 두 개의 대회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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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1999

    성장기

    1991년 12월에 개최된 한국연합회 제29회 총회에서 심태섭 목사가 연합회장에 선임되어 자양 연합회 제3기의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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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2004

    도전기

    한국연합회는 1990년대 후반에 제주분리 문제, 수동택지 조성 분양 문제 등으로 인해 리더십의 위기를 겪으면서 2000년 5월에 한국연합회 제31회 총회를 조기정기총회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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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현재

    선교2세기

    2004년 5월에 한국연합회는 별새꽃돌자연탐사과학관을 위탁받아 정식 기관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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