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1991-1999)
1992. 10월
1000명 선교사 운동,
1차 선교사 28명 파송
1991년 12월에 개최된 한국연합회 제29회 총회에서 심태섭 목사가 연합회장에 선임되어 자양 연합회 제3기의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북방선교 및 해외 선교 등에 대한 관심 및 역량 확대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1000명 선교사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1991년에 이재룡 교수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매년 1천 명의 청년들을 훈련시켜 아시아태평양지회에 소속된 17개 국가로 선교사를 파송하자는 취지로 제안되었다.
아태지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1992년부터 필리핀 실랑을 본부로해서 이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에 한국연합회는 1992년 2월에 외봉선교위원회를 구성하고, 김명수 목사를 선교사 양성소의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부터 청년들을 100명 선교사 운동에 적극 참여시켰다. 1992년 10월에 제 1기 선교사로 파송된 청년는 28명이었다.
이후 1993년 6월에 20명, 1993년 12월에 30명, 1994년 6월에 24명 등 매 기수마다 20-30명의 청년들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에는 한국 이외에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극 등지에서 많은 청년들이 참여하여, 1997년에 연인원 1,00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1992. 11월
사할린에 북방선교대학
(러시아 삼육대학) 설립 인가
1992년 11월에는 한국인 선교사가 러시아의 사할린 정부로부터 북방선교대학 인가를 받고 사할린 북방선교대학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1990년에 유영길 목사가 하바로브크스와 사할린에 한글학교를 개설한 것이 효시였다. 이후 김현수 목사가 1992년 8월에 사할린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그해 9월에 사할린에서 영어학원을 시작한 프레드 스쿠시 원장과 함께 사할린 정부에 북방선교대학 설립을 신청하여 11월에 인가를 받아 학교를 세웠다.
한국연합회는 이 대학을 삼육대학교 사할린 분교로 운영하기로 결의하고 5억 원의 건축 기금을 마련하여 분교 설립을 추진하였다. 이에 삼육대학교는 학교명을 러시아 삼육대학으로 바꾸고 정부에 교명 변경 및 대학법인인가를 받아 1993년 8월부터 경영학부, 언어학부를 설치해 대학 운영을 시작했다. 한국연합회는 1993년 9월 1일부로 최이권 교수를 러시아 삼육대학장으로 임명하고 4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러시아로 파송했다.
이후 학생수가 증가하여 1994년 9월에 시내 외곽에 5만여 평의 대지를 30년간 임대하여 학교를 건축하고 이전하였다. 러시아 삼육대학은 1990년대에 학생수가 200여 명에 이르는 등 교육사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교 건물 소유권 문제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어 2004년에 유로아시아지회로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1993. 11월 17일 삼육학원 재림연수원 준공
1993년 11월 17일에 삼육학원 재림연수원이 준공되어 본격적인 신앙 연수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재림연수원의 설립은 목회자들의 목회 정신과 평신도들의 신앙 정신을 부흥시키기 위해 자양 연합회 제3기 행정부가 추진한 핵심 사업 중 하나였다.
한국연합회는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의 영성 훈련을 위해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에 1만2천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1992년 12월에 연수원 건물 기공 예배를 드렸다. 아울러 연합회는 연수원 책임자로 엄기웅 목사, 총무로 황춘광 목사를 임명했다. 이들은 연수원 건축과 함께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재림연수원을 개원했다.
재림연수원의 연수 일정은 월요일 오후에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 헌신예배로 끝나는 1주일 과정으로 설계되었다.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조석예배, 강의와 노작활동이 공식 순서였고, 나머지는 개인 기도시간으로 구성되었다. 특별히 연수 기간 중 침묵 훈련도 포함되었다. 재림연수원이 개원됨에 따라 한국연합회 산하에 영성훈련 기관이 본격적으로 운영되었고, 이 기관은 한국 재림교인들의 영성과 신앙 의식 강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4. 9월 3일
한국연합회 선교 90주년
기념식 및 3천명 헌혈행사
1994년 9월 3일에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2만5천여 명의 교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연합회 선교 90주년 감사예배 및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 행사에는 로버트 폴켄버그 대총회장을 비롯해 세계 재림교회 지도자들과 한국의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기념예배에 이어 오후에 개최된 특별 초청강연회에는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교 신경외과 교수로서 <천혜의 손>의 저자인 벤자민 카슨 의사와 스탈린 정권 아래서 투옥되어 박해를 받았던 쿨라코프 목사의 특별 강연이 있었다.
선교 90주년 기념 행사 중에는 이웃사랑 실천을 위한 “3천명 헌혈 행사”도 전개되었다. 이 헌혈 행사는 8월부터 9월 3일까지 전국 재림교인들을 대상으로 전개되었으며, 9월 3일 안식일에는 행사장에 18대의 헌혈 차량을 도우원하여 집중 헌혈행사도 진행되었다.
이 행사에서 총 3,811명이 헌혈에 참여하였고, 10월달까지 4,200여 명이 헌혈증을 연합회로 보내서 위급 환자들에게 헌혈증을 나눠주었다. 선교 90주년 기념행사는 미디어 사역을 접목한 최초의 행사로서 재림교회의 미디어 역량의 발전을 예견하게 해 주었다.
1995. 4월 12일
사단법인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
(아드라 코리아) 승인
1995년 4월 12일에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일명 아드라 코리아)가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아드라 코리아는 한국 재림교회의 구호사업이 대총회의 국제구호개발기구(ADRA)의 한국 지부로서 도약한 구호 조직이다. 한국연합회는 구호봉사회를 통해 국내외 구호 사업을 추진했다.
특별히 한국연합회 구호봉사회가 1980년대 들어서서 사업의 영역을 국내를 넘어서 해외로 확대하면서 대총회 아드라와의 연계가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연합회는 1992년에 구현서 목사를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 회장으로 임명하고 대총회의 지도에 따라 한국 정부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기구를 사단법인으로 조직하기 위해 대총회와 아드라, 아태지회, 한국연합회에서 각각 2천만 원씩 총 8천만원의 자금을 확보하였고, 세부 계획을 제출하여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게 되었다.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의 인가를 받은 후 5월 10일에 대총회 아드라회장인 랄프 와츠를 초청하여 아드라 코리아의 공식 출범 행사를 개최했다. 이렇게 출발한 아드라 코리아는 6월 29일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전개하는 등 본격적인 구호사업에 참여했다.
1996. 5월 30일 여천요양원(여수요양병원) 개원
1990년대는 한국 재림교회가 다양한 사회 사업을 규모 있게 전개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별히 의료 및 보건복지 분야에서 전문적인 요양병원 사업이 이 시기에 추진되었다.
1996년 5월 30일에는 여천 뉴스타트 건강의원(여수요양병원 전신)이 개원되었다. 이 기관은 1997년 1월에 전북 장수군에 있던 덕유산 뉴스타트 센터와 통합한 후, 1998년 8월 28일에 여수요양병원으로 승격 개원되었다.
1998. 6월
수동요양병원(에덴요양병원)
부지 매입
한국연합회는 여수요양병원 개원과 더불어 1998년 6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에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부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9월에 200여 병상 규모의 요양병원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2000년 7월 5일에 요양병원 개원식을 거행하였고, 2001년 1월에 양일권 목사가 초대 원장에 취임한 후 6월에 건물을 준공하여 에덴요양병원이라는 명칭으로 요양병원 사업을 시작했다.
여수요양병원과 에덴요양병원은 한국 재림교회가 운영하는 전문 요양의료기관으로서 발전하였다. 에덴요양병원 설립과 함께 같은 해에 수동노인전문요양센터를 남양주시로부터 수탁받아 운영하였다. 이 사업들은 한국 재림교회가 보건과 의료 분야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997. 10월 30일
북아시아태평양지회
창립 기념 예배 거행
1997년에 북아시아태평양지회가 조직되었다. 한국연합회는 1915년에 아시아지회(Asiatic Division)에 소속되었다가, 1919년에 아시아지회가 원동지회(Far Eastern Division)와 호주연합회 및 인도연합회로 분리되면서 원동지회 소속이 되었다.
원동지회는 1995년에 아시아-태평양지회(Asia-Pacific Division)으로 개칭되었다가, 1997년 1월 1일부로 남아시아태평양지회(Southern Asia-Pacific Division, SSD)와 북아시아태평양지회(Northern Asia-Pacific Division, NSD)로 나눠지면서 한국연합회는 일본, 대만, 홍콩, 중국, 몽골 및 북한과 함께 북아태지회(약칭)로 소속되었다.
이 결의에서 북아태지회의 본부는 한국에 두기로 하였기 때문에 본부 건물을 매입한 후 1997년 6월에 경기도 일선으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지회 본부 이전을 마친 후 10월 30일에 지회 강당에서 북아태지회 창립 기념예배가 거행되었다.
북아태지회장은 1993년부터 아태지회장으로 사역을 한 전병덕 목사가 맡았다가 2003년부터 이재룡 목사가 지회장으로 봉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