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기(1978-1990)
1978. 2월
중한대회 제22회 총회에서
동중한대회, 서중한대회 분리
(5개 대회 체계)
1978년 3월 15일에 서울위생병원교회에서 중한대회 제24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총회의 핵심 의제는 중한대회를 두 개의 대회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중한대회는 서울과 경기도와 강원도, 그리고 충청북도의 제천과 단양 일대를 관할하고 있었다.
중한대회의 분리는 1974년 2월에 개최된 중한대회 제22회 총회의 경영위원회에서 결의된 안건이었다. 한국연합회와 중한대회는 이 안건의 추진을 위해 원동지회에 대회 분리를 제안하여 1978년 2월 9일에 지회의 승인을 받은 후 대회 분리를 추진하였다.
중한대회는 1978년 3월 6일에 서울시 관악구 동작동에 서중한대회 사무실을 마련하여 동서중한대회의 분리 기반을 마련한 후 3월 15일에 분리 총회를 실시하여 동중한대회와 서중한대회로 최종 분리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서 한국연합회는 다시 5개 대회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동중한대회는 서울의 동쪽 지역과 경기 동부 및 강원도 지역(제천, 단양 포함), 서중한대회는 서울의 서쪽 지역과 경기서남북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한국연합회는 5개 대회 체계를 구축한 후 자양 체계로 가기 위해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978. 12월 17일
식품공장 설립위원회 구성 및
삼육식품 사업 추진
한국연합회는 1978년 12월에 회기동 본부교회에서 개최된 제26회 총회 이후에 자양 시대를 열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식품공장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식품사업은 태릉에 삼육신학원을 운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부터 목장을 운영하여 우유를 생산 판매하였다. 1952년 11월에는 식품공장을 건축하여 식품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1970년대에 대학의 식품사업은 여러 모로 발전하였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미국과 호주의 모델에 따라 두유를 생산하는 식품사업을 한국에서도 추진하기로 계획하고 1978년 12월 17일에 식품공장 설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공장 설립을 위한 초기 자금은 삼육우유를 생산하는 삼육대학 실업부에서 투자하였고, 운영 자금 역시 5년 동안 대학 실업부가 수익금의 5%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삼육식품은 대학식품과 연계하여 추진하였다. 그러나 중서대회가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판정리에 공장 부지를 기증하고, 그곳에 공장을 세우면서 대학식품으로부터 독립된 사업체로 발전하였다.
삼육식품은 1982년 2월에 베지버거, 베지미트 등 통조림 제품을 출시하여 본격적인 건강식품 사업을 시작하였고, 1984년부터 삼육두유를 생산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삼육식품은 학교법인 산하의 사업체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수익금 전액을 교육사업을 위해 사용되었다.
1979. 4월 20일 삼육기술원 인가
1979년 4월 20일에 경산삼육고등학교 내에 삼육기술학원 설립 인가를 받았다. 경산삼육고등학교는 1969년부터 조성기 선생을 중심으로 기술교육을 시작하였다.
기술교육은 당시 한국 사회가 산업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업 교육을 위해서 매우 필요적절한 교육 사업이었다. 경산삼육학교의 기술 교육이 지역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자 학교 지도자들은 기술학원 설립을 위해 본격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경산삼육학교는 1977년 4월 1일에 삼육기술원을 발족하고 경산군 교육청에 인가를 신청하였고, 2년 후에 비로서 정식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삼육기술원은 컴퓨터, 정밀기기, 공작기계 등을 구비하고 각종 기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직업 교육을 실시하여 산업화 시대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삼육기술원은 1984년 4월에 서울위생병원 구내로 이전하여 서울에서 본격적인 기술학원 사업을 운영하였다. 서울에서 시작한 삼육기술원은 기술 교육 이외에도 방송통신고교와 연계한 야간 학습을 통해 정규 고등학교 자격을 얻게 하여 산업화 시대에 중요한 대안교육 과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83. 12월 6일
한국연합회 제27회 총회에서
자양연합회 출범
1983년 12월 6일부터 개최된 한국연합회 제27회 총회는 한국 재림교회가 80년 만에 자양 체계로 도약하는 결정이 이루어진 총회였다.
한국연합회가 자양 연합회로 승격하기 위한 준비를 갖춘 것은 1978년 12월에 개최된 26회 총회 이후였다. 당시 5개 대회 체계를 확립한 한국연합회는 재정적인 면에서 대총회 지원을 벗어나 완전한 자양 행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에는 한국연합회 본부 건물을 신축하였고, 대총회에 자양 조직 허가를 공식 요청하였다. 대총회는 4월 21일부터 23일까지 한국연합회와 5개 대회의 자양 역량을 심사하였고, 10월 11일에 마닐라에서 개최된 원동지회 추기회의에서 자양 총회를 허가했다. 지회로부터 자양연합회 조직을 승인 받은 후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5개 지방 대회들이 자양 체계를 위한 모델 헌장 및 세칙들을 마련한 후, 1983년 3월과 4월에 5개 대회(Mission)가 모두 자양 합회(Conference)로 조직되었다.
대총회는 6월에 한국연합회(Korean Union Mission)를 자양 연합회(Union Conference)로 승인하였다. 이에 한국연합회는 제27회 총회에서 자양연합회로 정식 조직되었다. 자양 조직으로서 한국연합회의 제1회기 사업을 이끌 회장으로는 전병덕 목사가 선축되었다.
1984. 11월 3일
한국연합회 선교 80주년
기념식 거행
1984년 11월 3일에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한국 재림교회 선교 80주년 기념 행사가 진행되었다. 선교 80주년 기념행사는 과거 선교 기념행사가 총회 직후에 본부교회 등에서 개최되었던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 가장 큰 실내체육관을 빌려서 진행되었다.
이 기념 행사에는 전국에서 2만2천여 명의 교인들이 참여하였다. 기념 행사에는 닐 윌슨 대총회장과 원동지회 임원 및 지회 소속 10개 연합회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닐 윌슨 대총회장은 내한 기념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교회 기관지인 <교회지남>은 10월호를 선교 80주년 기념 특집호로 발행하였다. 이 기념호에는 한국 선교역사를 재조명하는 시리즈물을 기획 기사로 게재하였는데, 김재신 목사의 “전도 사업,” 오만규 교수의 “교육 사업,” 천세원 목사의 “출판 사업,” 허은구 병원장의 “의료 사업“에 대한 기사가 수록되었다.
이 자료들은 한국 재림교회 80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연구물로서 가치가 있었다. 한국연합회는 이런 기념 행사를 통해서 앞으로 도래할 선교 90주년과 선교 100주년을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86. 12월 14일
한국연합회
평신도실업인협회 창립
1980년대는 평신도들에 의해 구호 및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대였다. 특별히 각 합회별로 조직된 도르가협회, 구호봉사회, 여성봉사회 등은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는 단체였다.
한국연합회는 평시도들의 협의체를 모색하여 1986년 12월 14일에 평신도실업인협회를 조직했다. 평신도실업인협회(ASI)가 미국에서 조직된 것은 1947년이었다. 그 해에 미국에서는 20여 개의 자영 기관들이 모여 “재림교회 자영기관 협의회"를 조직했는데, 이 조직이 1970년대 후반에 “재림교회 개인봉사 및 사업체 협의회“(ASI)로 몇잉을 바꾸어 평신도 단체로 발전하였다.
각 연합회가 이 단체의 조직을 강조하자 원동지회에서도 한국연합회에 평신도 단체 조직을 제안하였다. 이에 한국연합회는 1985년 11월에 5개 합회별로 평신도실업인협회 조직을 지원하였고, 그렇게 조직된 5개 합회의 평신도실업인협회 대표들이 1986년 12월 14일에 온양유스호스텔에 모여 한국연합회 평신도실업인협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이 단체는 지역사회에서 복음사업을 촉진하고 확장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평신도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1987. 1월 18일 “AWR-Korea” 사업 시작
한국연합회 예언의 소리 성경통신학교부튼 1987년부터 “재림교회 세계라디오“(AWR) 사업에 참여하여 방송 선교의 확장을 모색하였다.
대총회는 직접적으로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세계 여러 민족들에게 단파 라디오를 통해서 재림 기별을 전할 수 있는 선교 프로젝트로서 1971년부터 재림교회 세계라디오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사업은 유럽에서 시작하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러시아 등으로 확대되었다. AWR-아시아는 1987년 1월 18일에 미국령인 괌에 설치되어 18개국의 언어로 방송을 시작하였다.
이 방송은 아시아 30개국에 속해 있는 30억의 인구를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은 AWR-아시아가 개국되던 해인 1987년 3월 5일부터 한국어 방송을 손신하였다.
한국연합회 예언의 소리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괌 방송국으로 보내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괌 방송국에서 한국어 방송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연합회는 이 사업과 함께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에게 단파라디오 수신기를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여 방송선교 활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90. 2월 15일 <기본교리 27> 초판 발행
1897년 12월에 개최된 한국연합회 제28회 총회에서 유형환 목사가 연합회장에 임명되었다.
자양 연합회 제2기를 이끌어갈 연합회 행정부는 1989년에 “영적부흥위원회"를 조직하고 경건의 부흥 운동을 전개하면서 영적 사적들로 <증언보감>, <엘렌 화이트 자서전>, <마지막 날의 사건들> 등을 출간했다.
그리고 1988년에 대총회 목회부에서 발간된 <기본교리 27> 번역 사업을 추진하여 1990년 2월 15일에 초판을 발행했다. <기본교리 27>은 재림교회의 공식 교리 진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담은 책이었다.
대총회는 1980년에 “27개 기본 신앙“(27 Fundamental Beliefs)에 관한 진술서를 채택했다. 대총회 목회부는 1988년에 게라드 담스틱을 집필자로 선정하여 이 기본교리 진술서에 대한 구체적인 신학적 해석을 담은 서적을 출간하였고, 한국연합회는 그 책을 번역하였다.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재림교회는 공식적인 교리서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연합회는 이 책을 출간하고 보급함으로써 재림교회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