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니는 패시픽 유니온대학(Pacific Union College)에서 인쇄 예술을 전공하여 1963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졸업 직전인 1962년에 셜리(Shirlee Kehney)와 결혼하였고, 졸업하던 해인 1963년부터 몬테레이 베이 아카데미(Montere Bay Academy)에서 출판소 총무 겸 교사로 봉사하였다. 케이니는 1966년 말에 대총회로부터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몬테리이 베이 아카데미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1967년 3월 31일에 아내 및 아들과 함께 내한했다.
케이니는 태국 출판소로 전임하게 된 로버트 쉘돈의 뒤를 이어 시조사 총무로 임명되어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1967년 9월에 개최된 한국연합회 제23회 총회에서는 홍보부장에도 임명되어 1969년까지 그 업무도 담당하였다. 케이니가 시조사 총무로 사역하는 동안 시조사는 옵세트부와 제본부를 신설해서 운영하였고, 원동지회의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인턴 기자를 선발하여 편집부의 전문화를 위해 노력했다. 1970년에 미국으로 잠시 귀국했다가 10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시조사 부총무로 사역을 계속하면서 해 리뷰 앤드 헤럴드(Review and Herlad)에 게재하는 등 홍보 활동도 하였다.
케이니는 4년의 사역을 마치고 1971년 8월 15일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참고자료]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November, 1966, 2, July, 1969, 14; H. R. Kehney, “Establishing a Church on a Korean Island,” Review and Herald, May 13, 1971, 18, 19; Review and Herald, June 3, 1971; 20; 「교회지남」, 1967년 5월호, 19,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