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워디는 40년 이상을 교단의 사역에 헌신한 폴 노스워디(Paul I. Nosworthy)의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1960년 5월 28일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67년부터 그의 마지막 사역지인 아칸사스-루이지애나합회(Arkansas-Louisiana Conference) 서기 겸 회계에 임명되어 17년 동안 사역하다가 1974년에 은퇴하였다. 한편 그녀의 모친(Mrs Nosworthy, Ruth Eleanor Nicola)은 재림교회 대총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존 바잉톤(John Byington)의 증손녀로서 재림교회 신앙의 깊은 뿌리를 가진 신앙인이었다.
노스워디는 앤드류스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동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산파스쿠알 아카데미(San Pasqual Academy)에서 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패시픽 유니온대학 부속 예비학교(Preparatory School)에서 3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렇게 교육사업에 종사하던 노스워디는 부친이 사역에서 은퇴하던 해인 1974년 봄에 한국 선교로 부름을 받았다.
노스워디는 1974년 8월에 내한해 9월 1일부터 삼육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1978년 7월까지 4년 동안 대학생들을 가르쳤다. 특별히 1975년 3월 1일부터 영문학과의 학과장을 맡아 학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41명의 영문학과 학생들이 졸업해서 교단과 사회에 진출하였다. 이렇게 영문학과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던 노스워디는 1978년 1학기를 마치면서 6월 29일에 대학에서 준비한 송별회(버지스 박사 부부, 노신림 교수)를 끝으로 사역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으로 돌아간 노스워디는 왈라왈라대학(WWC)의 영어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그 대학의 영어 랭귀지 코스(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참고자료] Southwestern Union Record, September 14, 1974, 7;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April, 1975, 3; 「교회지남」, 1978년 9월호, 18; North Pacific Union Conference Gleaner, July 20, 1981, 5; February 1, 1993, 18; Collegiate Quarterly, October-December, 1990, 4,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