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은 1958년에 미국 중앙연합회(Central Union) 소속의 유니온대학(Union College)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콜로라도주에 있는 보울더화이트 기념병원(Boulder Memorual Hospital, Colorado) 회계과장으로 교단에서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던 아내와 결혼한 후 1964년까지 재무실에서 근무하였다. 존슨은 1964년 2월에 병원의 주임 회계로 승징하여 사역하던 중 대총회로부터 아프리카 선교로 부름을 받고 1964년 11월 25일에 콜로라도를 떠나 1965년 1월 3일에 비행기로 북아프리카로 출발했다. 아내와 두 자녀(Randy, La Vonne)를 데리고 리비아의 벵가지(Benghazi, Libya)에 도착한 존슨은 그곳에 있던 재림교회 선교병원에서 총무로 근무하였다.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5년 동안 병원의 총무로 근무한 존슨은 1969년에 사역을 잠시 접고 미국으로 돌아와 앤드류스대학교에서 경영행정학 석사과정에 입학해 1970년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석사학위를 마쳤을 때 대총회는 원동지회 선교를 제안하였고, 그는 그 요청을 수락하여 1970년부터 인도네시아 반둥에 있는 위생병원(Rumah Sakit Advent)에서 총무로 근무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약 3년 동안 일하던 존슨은 원동지회로부터 한국 선교의 요청을 받고 1973년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1970년대 초에 서울위생병원은 병원 신축 공사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병원 총무가 공석이 되었다. 한국연합회는 병원의 총무로 병원 건축 경험이 많은 선교사를 요청했고, 원동지회는 이 요청에 적합한 인물로 존슨을 추천하였다. 존슨은 1974년 1월 5일에 한국으로 들어와서 위생병원 총무로 사역을 하였다. 그는 이근화 원장과 함을 합쳐서 1975년부터 병원 신축 2차 공사를 적극 추진하여 1976년 7월 16일에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존슨은 이 순서에서 총무의 자격으로 병원의 연역을 보고하였다. 그는 서울위생병원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사역을 맡아 건축을 완료하고 병원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이렇게 약 3년간 병원 건축 및 안정을 위해서 사역하던 존슨은 캔자스주 쇼니(Shawnee, Kansas)에 있는 쇼니대회 의료센터(Shawnee Mission Medical Center)로 발령을 받아 1977년 5월 22일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난 후 존슨은 쇼니대회 의료센터의 부전무(associate executive director)로 활동하다가 1982년에 원장(president)으로 임명되어 쇼니대회의 의료센터 발전에 기여하였다.
[참고자료] Central Union Reaper, March 4, 1958, 2; January 6, 1959, 4; December 1, 1964, 3;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November, 19709, 9; March, 1972, 10; 「교회지남」, 1978년 2월호, 19; 이근화, 『한국재림교회 의료선교 회고』. LA: 미주시조사, 2004. Review and Herald, June 9, 1977, 23; November 3, 1977, 26; August 19, 1982, 21 May 21, 198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