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는 1919년 8월 30일에 뉴욕주 버팔로(Buffalo, NY)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모리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어 미시간주에서 25년 동안 개업 치과의사로서 일했다. 그가 개업의사로 일하는 동안 1남 2녀 중 장녀는 결혼했고, 아들은 앤드류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 즈음에 그는 대총회로부터 서울위생병원 치과의사로 선교 요청을 받고 기꺼이 자원하여 1971년 8월 27일에 미국을 떠나 9월 10일에 내한했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인 1971년 5월에 한국연합회는 서울위생병원 치과의사였던 알렌이 미국으로 귀국하게 됨에 따라 그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응하여 한국에 온 링거는 치과 진료 뿐만 아니라 의료 선교 비행기인 “천사호”를 조종하여 도서 지역에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한지 3개월 후인 1971년 12월 2일에 링거는 인천에 속한 섬인 덕적도에서 무료 진료를 하기 위해 비행하던 중 강풍으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링거와 의료진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비행기의 기체가 파괴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링거는 10년 동안 치과의사로 봉사하였고, 그의 부인(Barbara M. Ringer)은 서울위생병원 부속 고아원인 성육원이 1981년 6월에 완전히 문을 닫을 때까지 그 사역을 위해 봉사하였다.
링거 부부는 1981년 6월 1일에 한국을 떠났다. 링거 부인은 1982년 10월 15일에 로마린다에서 사망했고, 로버트 링거는 말레네 반 퓸브룩(Marlene Van Puymbrouck)과 재혼하여 테네시주 채터누가(Chattanooga, Tenn.)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009년 1월 1일에 사망했다.
[참고자료] Lake Union Herald, April, 2009, 33; 「교회지남」, 1971년 10월호, 18; 1972년 1월호, 17; Review and Herald, February 10, 1983, 22; 박광선, “치과의사의 약력,” 이근화, 『한국 재림교회 의료선교 회고』, LA: 미주시조사, 2003, 389-397; 링거, “치과의사 회고록,” 앞의 책, 398-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