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볼드는 1943년에 로마린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외과의사가 되었다. 그의 아내인 이사벨(Isabel A. Stewart)도 같은 해에 글렌데일 간호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뉴볼드 부부는 1961년에는 르완다-우룬디에 있는 병원에서의 의료선교 요청을 받고 6월 25일에 뉴욕을 떠나 응고마 병원(Ngoma Hospital)로 떠났다. 그곳에서 2회기 동안 의료선교 사역을 하던 그는 1970년 6월에 한국 의료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1970년 10월 31일에 내한해 서울위생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뉴볼드는 1971년 11월 29일에 개최된 연례 행정위원회에서 서울위생병원장으로 선임되어 미국으로 떠난 정전걸 병원장을 대신하여 병원 사업의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병원 건축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여 선교사들에 대한 불신이 발생하여 그는 1년 만에 병원장을 사임하였다. 이에 서울위생병원 이사회는 1972년 12월 4일에 병원장에 한국인 의사인 이근화를 임명하고, 선교사인 그를 부원장에 임명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부원장으로서 외과 진료에 전념하였고, 1973년에는 한국연합회 의료부장에 임명되어 1974년까지 한국연합회 의료 사업을 이끌었다. 1977년에 휴가차 미국으로 돌아왔던 뉴볼드는 부인과 함께 1977년 8월 28일에 로스엔젤레스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의료 사업에 헌신하였다.
한국에서 9년간 의료 사역에 헌신하던 뉴볼드는 대총회로부터 괌으로 선교 요청을 받고 1979년 9월 30일에 한국을 떠났다. 미국으로 잠시 귀국한 그는 괌 선교를 준비한 후에 1979년 12월 31일에 로스엔젤레스를 떠나 괌(Tamuning, Guam)에 있는 재림교회 진료소(Guam SDA Crinic)에서 외과 의사로 봉사했다.
[참고자료] Review and Herald, July 27, 1961, 22; November 10, 1977, 31; March 27, 1980, 31;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June, 1970, 15; 「교회지남」, 1972년 1월호,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