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콕스는 1927년 7월 14일에 홍콩(Hong Kong, China)에서 선교사였던 윌콕스(L. C. Wilcox)의 세 자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패시픽 유니온대학(Pacific Union College)에서 신학을 전공하였고, 그곳에서 오드리 풀러(Audrey Fuller)를 만나 결혼했다. 1951년부터 3년 동안 중앙 캘리포니아합회(Central California Conference)에서 목회 사역을 하던 윌콕스는 1954년에 원동지회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인도네시아연합회(Indonesia Union Mission) 출판부장으로 사역하였고, 1962년에 인도네시아연합회장에 임명되어 1967년까지 총 15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선교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인도네시아의 복음 사업을 위해 헌신하던 윌콕스는 1967년 11월에 필리핀에서 개최된 원동지회 총회에서 한국연합회장에 선출되었다. 한국전쟁 직전에 내한해서 18년 동안 한국 선교를 이끌면서 선교부, 구호부, 종교자유부를 거쳐 한국연합회장으로 봉사하던 윌리엄스가 일본 오키나와대회장으로 이전하고, 그의 후임으로 한국연합회장에 임명된 윌콕스는 재정난 등으로 인해 어려움 중에 있던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해 행정조직의 구조조정을 통해서 6개 대회를 3개 대회로 축소하고, 사역자 감원을 결의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연합회장 임기 4년 동안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던 윌콕스는 1970년 11월에 개최된 한국연합회 제24회 총회에서 연합회장을 제외한 임부장들이 한국인 지도자들로 구성되자 선교사로서 부담을 가지고 다른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지회에 요청하였다. 이에 원동지회에서는 윌콕수 목사를 남동아시아연합회(Southeast Asia Union Mission) 소속의 사바대회(Sabah Mission)의 대회장으로 임명하였고, 그는 1971년 9월 20일에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로 이주하였다.
한국을 떠난 후 윌콕스는 1971년부터 사바대회장으로 사역하였고, 1975년에 남동아시아연합회의 연합회장에 임명되어 행정자로서의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는 1978년 5월까지 연합회장으로 사역을 하다가 그해 6월에 미국으로 귀국하게 되어 24년 동안의 원동지회에서의 선교 사역을 마무리했다. 그 후로 5년동안 미국에서 사역하던 윌콕스는 1983년 9월에 태국미션(Thailand Mission)의 미션장으로 임명되어 다시 선교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1989년까지 6년 동안 태국대회의 대회장으로 헌신하던 윌콕스는 선교사로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그해 7월 미국으로 돌아가 북캘리포니아(Northern California)의 지역교회 목사로 마지막 사역을 하였고, 정년을 맞이해 은퇴했다. 은퇴 후 가족과 여생을 보내던 윌콕스는 2012년 3월 31일에 테네시주 그린빌(Greeneville, Tenn.)에서 사망했다.
[참고자료]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December, 1962, 16; December, 1971, 14; October, 1975, 2; 「교회지남」, 1968년 1월호, 7; 1968년 2월호, 36; The Southeast Asia Union Messenger, May-June, 1978, 1; January-February, 1984, 6; March-April, 1989, 3; Pacific Union Recorder, June, 2012,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