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은 부모가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때인 1928년 11월 7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인 오티스 에릭(Otis G. Erich)은 방사선과 전문가(roentgenologist) 중국 상하이에서 의료 및 교육 사업에 참여한 선교사였다. 에릭은 의료전도자 대학(College of Mdeical Evangelists)에서 의료 과정을 마치고 미 육군 의무부대(Port Ord, California)에서 2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릴리안 애니 맥페터스(Lillian Annie McFeters)와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패시픽 유니온 대학(Pacific Union College)을 졸업하고, 속기사 및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에릭은 군 제대 후에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Bakersfield, Calif.)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한국 의료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아내와 함께 1959년 11월 7일에 배편(S. S. President Johnson)으로 샌프란시스코항을 출발해 11월 28일에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에릭은 서울위생병원의 분원으로 개원되어 발전한 부산위생병원의 병원장에 임명되었다. 부산위생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1962년 3월에 제주도의 의료봉사팀을 파견하여 대민 의료봉사를 지도하였다. 특별히 에릭은 한국에서 한국어로 의사면허 시험에 통과하기도 했다. 에릭이 병원장으로 재직하던 1965년 2월 17일에는 새로운 부산위생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헌당식을 하였다.
부산위생병원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던 에릭은 1965년 5월 16일에 안식년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서 내과전문의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1년 후인 1966년 9월 2일에 그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서울위생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66년 12월에 다시 부산위생병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서울위생병원장이었던 조지 루가 은퇴를 하게 됨에 따라 한국연합회는 1967년 3월에 에릭을 서울위생병원장에 임명하였다. 그해 10월에 에릭은 서울 부시장으로부터 “특별시민”상(Special Citizenship)을 받았다.
에릭은 1970년 5월 25일에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972년 12월에 용버그 메모리얼 병원(Youngberg Memorial Hospital)에 파송 결의를 받고, 1973년 8월 5일에 싱가포르로 갔다. 그곳에서 의사로 사역하던 에릭은 1976년에 영구 귀국 결의를 받고, 이듬해인 1977년 9월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 Oregon)에서 말년의 생애를 보내다가 2012년 6월 11일에 사망했다.
[참고자료]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September, 1927, 10; January, 1929, 16; June, 1930, 9; January, 1960, 16; April, 1965, 10; October, 1967, 7; April, 1974, 3; North Pacific Union Gleaner, October, 2012, 32; Review and Herald, December 10, 1959, 32; 「교회지남」, 1960년 2월호, 20, 104; 1960년 6월호, 64; 1960년 9월호, 36; 1961년 3월호, 36; 1962년 1월호, 17; 1962년 2월호, 3, 29, 32, 35; 1962년 4월호, 5; 1963년 2월호, 6; 1964년 3월호, 36; 1964년 4월호, 12; 1965년 2월호, 16; 1965년 6월호, 22; 1966년 10월호, 36; 1967년 10월호,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