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던은 미시간주 베리언 스프링스(Barren Springs, Michigan)에 있던 앤드류스대학교에서 학업했고, 그 기간에 비비안 버트넷(Vivian Burtnett)과 결혼했다. 그는 리뷰 앤드 헤럴드사의 아트부에서 근무했고, 패시픽 출판소의 국제 지부에서도 일했다. 그러다가 쉘돈은 한국연합회 시조사 총무로 부름을 받고 1959년 12월 23일에 아내와 함께 내한하였다. 그는 시조사 총무로 출판사업의 발전을 위해 6년 동안 헌신하였으며, 특별히 공보 담당으로서 사진과 글을 통해서 재림교회를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리는 일에 봉사하였다. 그가 시조사 총무로 일하던 1963년 9월 11일에는 새 인쇄기(독일 하이델베르크 자이언트 자동 실린더 인쇄기)를 구입하여 출판 사업의 확장을 이루었다.
쉘던은 휴가를 얻어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헸다가 1964년 7월 19일에 유럽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한국연합회 지도자들과 함께 시조사의 확장을 추진하여 1964년 10월 8일 기존의 건물 옆에 2층(60 feet x 70 feet) 건물로 출판사 건물을 신축하는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이듬해인 1965년 3월까지 건물은 완공했다. 아울러 『시대의 소망』 완역을 추진하여 23번째 화이트 부인의 서적의 번역 작업을 추진하였다. 한국에서 시조사 총무로 사역하는 동안 쉘던은 공보 담당으로서 글과 사진으로 한국의 소식을 많이 알렸다. 특별히 그는 한국의 다양한 활동들을 사진에 담아 감동적인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 『한국의 새벽』(Daybreak in Korea)이라는 책을 1965년 1월에 서던출판소(Southern Publsining House)에서 출판하였다.
시조사 총무이자 공보 담당으로 활동했던 쉘던은 방콕에 있는 태국출판소(Thailand Publishing House) 총무로 발령을 받고 1966년 6월 15일에 한국을 떠났다. 그가 한국을 떠나게 되자 대총회는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베이 아카데미Monterey Bay Academy Press)에 있던 출판소에서 사역하던 케이니(Herold R. Kehney)를 시조사 총무로 임명하였다. 한편 쉘던은 태국에서도 사진과 글을 통해 재림교회와 출판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1968년 여름에 휴가차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서 사역을 계속하였다. 태국에서 사역하던 중 쉘던은 대총회 산하로 기관인 기독교 점자기록재단(Christian Record Braille Foundation)의 홍보 담당자로 임명을 받아 네브라스카주 링컨(Lincoln, Nebraska)에 정착하였다.
[참고자료]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January, 1960, 16; November, 1963, 11; September, 1964, 14; December, 1964, 4; September, 1966, 3; August, 1968, 13; C. G. Cross, “Former Far East Worker Appointed Public Relations Director of Christian Recorder,” Far Eastern Division Outlook, January, 1970, 6; Review and Herald, May 5, 1966, 24; October 27, 196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