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리는 1917년 12월 11일에 순안의명학교 교장이자 조선합회 교육부장으로 사역한 하워드 리와 캐리 스캇 리의 둘째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20년 12월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 후 성장하였고, 오리건대학교(Oregon University)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다. 대학 졸업 후 캐나다 전문대학(Canadian Junior College)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원동지회의 부름을 받고 교육선교사가 되어 1946년 8월 22일에 일본 선교대학(Japan Missionary College)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얼마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오리건주에 위치한 로렐우드 아카데미(Laurelwood Academy)에서 교사로 사역하던 그는 그의 형인 제임스 리가 교사로 사역하던 삼육신학원의 교사로 발령을 받고 1949년 6월에 한국에 입국하였다.
도널드 리는 내한 직후 어학을 배운 후 시조사 총무로 임명되어 1950년에 출판사업을 지도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그해 6월 26일 자정에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954년 8월에 한국으로 다시 나와 그달 25일에 정동심 목사 후임으로 삼육신학원장에 취임하였다. 그 직책은 그의 형이었던 제임스 리 목사가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약 4년간 수행하던 것이었다. 이로써 도널드 리는 부친 하워드 리, 형 제임스 리와 더불어 삼육대학교의 전신인 교육기관의 책임자로 사역한 선교사 가족의 계보를 이었다. 그가 원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삼육신학원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학제를 개편하고, 교실, 강당, 기숙사, 과학관, 행정관 등을 건축하여 학교의 발전을 이끌었다.
교육선교사로 사역하던 도널드 리는 1956년 제17회 한국연합회 총회에서 목사로서 안수를 받았다. 아울러 1957년부터 1959년까지 한국연합회 교육부장을 겸임하였다. 이처럼 한국 재림교회의 교육기관과 교육 사업에 헌신하던 도널드 리는 1959년 10월 8일에 개최된 한국 기독교 선교 75주년 기념식에서 조지 루, 나오미 먼슨과 함께 재림교회 선교사로서 한국 정부로부터 공로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60년 5월에 미국으로 영구 귀국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였다.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 도널드 리는 앤드류스대학교(Andrews University)의 홍보 담당 및 총장 보좌역을 맡기도 했다. 재림교회의 교육 사업의 발전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해온 도널드 리는 2003년 4월 25일에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Loma Linda, Calif.)에서 사망했다.
[참고자료] Adventist Review, April 22, 2004, 30; 「교회지남」 1949년 12월호, 94; 1954년 8월호, 48; 1954년 10월호, 56; 1955년 3월호, 2; 1955년 4월호 13; 1958년 10월호, 64; James M. Lee, Our Country, Our College. Seoul: Sahmyook University press,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