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슨, 조지

George W. Munson
1947. 07. 28-1966. 05. 29
1918. 10. 22-2009. 01. 04
미국, 출판인, 목사
문선일(文善一)
먼슨은 조부(Ralph Waldo Munson, 인도네시아 재림교회 개척자, 호주 선교사)와 부친(Albert Munson,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선교사)의 영향으로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 그는 1918년 10월 22일에 알베르트와 캐서린(Albert and Catherine Munson) 사이에서 네 아이 중 장남으로 호주 혼스비(Hornsby, Australia)에서 태어났다.

 그는 패시픽 유니온 칼리지(Pacific Union College)에서 아내가 된 나오미(Naomi)를 만났는데, 그녀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라이먼 바워즈(Lyman I. Bowers)이었다. 결혼 후 대학을 졸업하고 하와이에서 인턴 전도사로 활동하던 먼슨은 1946년 말에 대총회로부터 한국 선교의 부름을 받고 선교사의 길에 접어들었다.

  먼슨은 1947년 7월 9일에 미국을 출발하여 그달 28일에 한국에 입국해 시조사 총무로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1948년 5월 29일에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는 시조사 총무로서 「교회지남」에 문서 전도와 관련된 기사 및 소식을 많이 게재하였고, 전국을 다니면서 문서 전도 사업을 독려하는 사역을 수행하였다. 아울러 전도회도 인도하였는데, 1949년 10월에는 청량리에서, 1950년 5월에는 부산에서 전도회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먼슨은 한국교회를 지도하던 여러 선교사들과 함께 일본 도쿄로 피난하였다. 전쟁으로 일본에 체류하던 기간에 일본연합회 총회가 있었는데, 이 총회에서 먼슨은 제임스 리와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다(1951년 4월). 그는 안수를 받은 후 제임스 리와 함께 오사카에서 여러 차례 전도회를 개최하였고, 9월 8일에는 예배당을 건축한 후 교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한국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선교사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자. 먼슨 목사도 1951년 9월 하순에 한국으로 돌아와 신설된 한국연합회 순회전도부장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진주, 통영, 욕지도, 부산 범일동, 죽변과 울진, 서울 청진동에서 순회 전도회 활동을 하여 놀라운 선교적 결실을 맺었다. 이렇게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1953년 6월에 안식년을 맞이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954년 7월 9일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전도대장으로 계속 활동하던 먼슨 목사는 1955년 초에 삼육신학원의 교수로 전임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56년에 한국연합회는 “예언의소리” 라디오 방송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이 사업 추진위원회에 참여한 먼슨은 “예언의소리” 라디오부장에 임명되어 1966년에 한국을 떠날 때까지 예언의소리 라디오 방송부의 책임 목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7년 한국연합회 제18회 총회에서 먼슨 목사는 목회의장에 임명되어 1966년까지 이 직책을 수행하였고, 그의 아내 나오미(Naomi Minson)는 가정위원장에 임명되어 한국을 떠날 때까지 연합회의 가정 사역을 총괄하였다. 그녀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2대째 선교사로 활동한 공이 인정되어 1959년 10월 8일에 개최된 한국 선교 75주년 기념식에서 조지 루 의사, 도널드 리 목사와 더불어 선교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먼슨 부부는 1961년 7월에 안식년을 맞이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962년 8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직책을 계속해서 수행하였다.

  한국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던 먼슨 부부는 1966년 4월 9일에 개최된 원동지회 평의원회에서 보르네오 북부의 사바이(Savai’i) 섬에 있는 사바대회(동남아시아연합회 소속) 회장에 임명되어 8월 말에 한국을 떠났다. 그곳은 먼슨 목사의 조부와 부친이 사역하던 곳이었다. 1966년 9월 6일에 사바이 섬 예셀톤(Jesselton)에 도착한 먼슨은 4년 동안 그곳에서 대회장으로 사역한 후 1970년에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이후 1973년에 하와이로 가서 1979년까지 목회자로서 사역을 하였다. 1984년에 은퇴한 이후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서 도시 선교(Inter-city mission work)에 종사하였고,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 교회 개척의 이야기』(More Than Conquerors)를 저술하기도 했다. 먼슨은 2009년 1월 4일에 로마린다 대학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참고자료] The Youth’s Instructor, May 1929, 13; Pacific Union recorder, March, 2009; The Messenger, September-October, 1966, 1; 「교회지남」, 1947년 1-2월호, 16; 1947년 8월호, 16; 1948년 6월호, 16; 1948년 10월호, 7; 1948년 11월호, 6; 1949년 8월호, 3; 1949년 10월호, 7; 1951년 12월호, 95; 문선일, “전도부 보고,” 「교회지남」, 1952년 7월호, 36; 1955년 2월호, 16; 1956년 5월호, 62; 1957년 5월호, 48; 1958년 4월호, 35; 1958년 6월호, 31; 1958년 7월호, 8; 1959년 11월호, 138; 1962년 8월호, ; 1966년 6월호, 12: 이국헌. 『목사 임성원 평전』. 서울: 삼육대학교출판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