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쉘은 1891년 8월 19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독일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세 되던 해에 함부르크 출판사(Hamburg Publishing House)에서 재림교단의 사역자로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결혼 후인 1920년 9월 20일에 그는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Hague, Holland)로 이주해, 네덜란드대회(Netherlands Conference)의 서기 및 화란출판사(Dutch Publishing House) 총무로 봉사했다. 쉘은 1928년에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파견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합회(Dutch East Indies Union Mission)의 서기 및 회계로 사역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11년 동안 사역하던 쉘은 조선합회 서기 겸 회계로 임명되어 1939년 5월 3일에 내한하였다. 당시 원동지회에서는 조선합회 서기 겸 회계였던 이티엘 길리스를 네덜란드령 동인도합회의 서기 겸 회계로 임명하면서, 헤르만 쉘을 조선합회로 보내는 맞교환 인사를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에 온 쉘은 1941년 2월 25일까지 약 2년간 내한 선교사로 봉사하였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서구의 선교사들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쉘은 1941년 2월 25일에 한국을 떠나 필리핀 마닐라로 이동했고, 그해 9월에 인도네시아로 옮겨 그곳 합회의 선교 사역을 지원하였다. 그후 1947년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서 휴가를 보낸 후 1948년에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쉘은 인도네시아 출판사(Indinesia Publishing House)의 총무 및 예언의 소리부 책임자로 봉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네덜란드 재림교회의 목사로서 사역하였다. 이 시기에 그의 아내 리디아(Lydia Schicting)가 사망하여, 1952년에 헤이즐 모테(Hazel Mote)와 재혼하였다. 은퇴 후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테네시주로 이동하였고, 1980년 2월 24일에 콜몬트(Coalmont, Tenn.)에서 사망했다.
[참고자료] Adventist Review, April 10, 1980, 14; 「교회지남」, 1939년 1월호, 48; 1939년 4월호, 4; 오만규. 『한국선교100년사』. 서울: 시조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