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슨, 해리 파머

Harry Farmer Benson
1932. 09-1939. 05. 22
1882. 06. 28-1947. 10. 06
미국 목사, 행정가, 교육자
변손(邊遜)
벤슨은 1882년 6월 28일에 오하이오주 놀워크(Worwalk, Ohio)에서 태어났다. 1901년 5월에 침례를 받고 재림교회에 입교한 그는 1904년부터 교회 사역을 시작하였다. 오하이오주 톨레도(Toledo, Ohio)에서 개최된 복음전도회에 선교인으로 참여했던 그는 1905년에는 인디애나주 니덤(Needham, Indiana)에 위치한 비치우드 아카데미(Beechood Academy)에서 농업과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진으로 사역하였다. 그는 1906년 7월 24일에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Pittsburgh, Pennsylvania)에서 헬렌 맥내어 보그스(Helen McNair Boggs)와 결혼한 후 일본선교사로 임명되어 그해 9월에 일본의 요코하마로 입국하였다.

  벤슨은 일본미션(Japan Mission)의 서기 겸 회계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는데, 1907년 10월에는 일본미션 감독인 필드(F. W, Field) 목사와 함께 조선 선교를 위해 파견되었던 제임스 슐츠(James E. Schultz) 목사를 데리고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다. 벤슨은 1908년에 도쿄 선교훈련학교를 창립하였고, 1912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15년 7월에 일본미션 사역자 양성소를 설립한 후 일본미션의 교육부 서기로 임명되었고, 1929년에는 홋카이도 선교부의 책임자로 임명되는 등 일본 재림교회 선교를 위해서 봉사하였다. 특별히 벤슨은 휴가 기간 동안 마운트버논 아카데미와 애틀랜틱 유니언 칼리지에서 가르쳤고, 재림교회 신학대학원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벤슨이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32년 9월부터였다. 그는 탁걸의 후임으로 순안의명학교 실업부의 관리자로 봉사하였고, 1934년에는 의명학교에서 운영한 식품 사업을 겸직으로 맡았다. 특별히 벤슨은 교장이었던 하워드 리가 영구 귀국한 1936년 말에 순안의명학교의 교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의명학교 교장은 이성의 목사가 임명되었는데, 교직원들의 반발로 취임하지 못하고 안식일학교 부장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서, 실업부 책임을 맡았던 벤슨 선교사가 잠시 교장직을 승계하였던 것이다. 벤슨은 1937년 7월에 의명학교를 순안의 주체들에게 양도할 때까지 의명학교의 교장으로서 봉사하였다.

  벤슨은 193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재림교회 대학에서 사역하였으며 고혈압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그는 태평양 전쟁 상황에서도 일본에 거주하다가 전쟁의 양상이 악화되자 1942년 2월에 싱가포르로 대피하였고, 그 후에 미국으로 귀국해 홈 스터디 교육기관(Home Study Institute)에서 비정규직으로 봉사하였다. 벤슨은 1947년 10월 6일에 버지니아주 알링턴(Arlington, Virginia)에서 사망하여 메릴랜드주 포트 링컨 묘지(Fort Lincoln Cemetery, Maryland)에 묻혔다.

[참고자료] Columbia Union Vistor, August 1, 1906, 4; Review and Herald, November 27, 1947, 26; 「교회지남」, 1932년 10월호, 32; 이영린. 『한국재림교회사연구』. 서울: 선명문화사,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