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스머는 서인도제도에서 초기 선교사로 활동하던 부모로 인해 1897년 12월 6일에 자메이카 킹스톤(Kingston, Jamaica)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고모는 1900년에 호주에서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와 동역한 인물이었다. 1920년에 로마린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캐나다 앨버타 주 캘거리(Calgary)에 위치한 앨버타 요양병원(Alberta Sanitarium)에서 실습을 했고, 포틀랜드 요양병원(Portland Sanutarium)에서 수련의 과정을 거쳤다. 1922년 6월 5일에 아이다 루이스 핸슨(Ida Louise Hanson)과 결혼한 후 포틀랜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대총회로부터 한국의 의료선교에 대한 부름을 받았다.
헤이스머는 가족과 함께 1925년 3월 6일에 한국에 들어와 순안병원 원장으로 선교를 시작했다. 순안병원은 1908년에 시작하여 러셀(Riley Russell) 의사에 의해 발전하면서 1920년 여름에 서양식 2층 건물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1922년에 러셀 의사가 가족들의 질병으로 인해 미국으로 귀국하여 병원 사업이 위축되었고, 1923년 가을에 내한한 스콜스(H. E. Scoles) 의사도 질병으로 인해 1년 만에 귀국하면서 순안병원은 1924년에 가을에 잠시 문을 닫았다. 이런 상태에서 1925년 4월에 순안병원에 부임한 헤이스머 의사는 병원의 상태가 나빠서 병원 수리를 추진하면서 6월 1일부터 제한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 시기에 그는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던 중에 열차에 뛰어들어 인사불성이 된 한 남자를 응급치료 한 후 평양까지 호송하여 목숨을 살리는 미담을 남기기도 했다. 순안병원의 수리는 1925년 말에 마무리되었고, 헤이스머는 새롭게 단장된 병원 건물에서 1926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인 진료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6개월 후에 소위 “허시모 사건”으로 알려진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여 그의 한국에서의 사역은 1년 6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가 한국에 온 지 반년 만인 1925년 9월 12일이었다. 그 때 헤이스머는 병원장 사택 마당에 있는 과일을 상습적으로 훔치던 한 소년(김명섭)을 잡아 그의 어머니의 동의 아래 “도적”이라는 글자를 두 뺨에 각각 한 글자씩 써서 사사로이 형벌을 가했다. 헤이스머는 그 소년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2주 후면 사라질 수 있는 질산은(silver nitrat)을 사용해 글씨를 새겼다. 당시 이 일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1926년 6월 28일에 이 사건이 「조선일보」(朝鮮日報)에 보도되면서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다. 헤이스머는 그해 7월 12일에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으로부터 상해죄로 기소를 당했고, 8월 5일에 1심 재판에서 징역 3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후 검찰 측의 항소와 상고를 통해 11월 18일에 1심 형과 같은 형이 최종 확정되면서 법적 판결은 마무리되었다. 당시 조선합회는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금을 주고 헤이스머 의사는 병원장 직위에서 해임한 후 본국으로 귀국하도록 종용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헤이스머 의사는 피해자 가족에게 자체 배상하고 사과한 후 해임 결의를 수용하고 1926년 12월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으로 귀국한 헤이스머는 매사추세츠주 스톤햄(Steneham)에 있는 뉴잉글랜드 요양병원(New England Sanitarium)에서 38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 그는 1983년 11월 29일에 사망했고 앨라배마 주 체로키(Cherokee)에 묻혔다.
[참고자료] Edward J. Urquhart, “Statement regarding the Korean Haysmer Affair,” The General Conference Medical Department Bulletin (August, 1926), 1-5; Extracts from a letter dated July 12, 1926 fro Dr. C. H. Haysmer to his parents, 1-2; “Deaths-Haysmer, Clyde Albert,” Adventist Review, February 23, 1984; Matt Van Volkenburg, “Dor. Haysmer and the Apple Thief: The ‘barbaric AmericaniIncident’ of 1926,” in Gusts of Popular Feeling, September 26, 2016; 오만규. “허시모 사건의 진상과 교훈.” 「선교와 사회」 12 (2004); 한규무. “허시모 사건의 경위와 성격.” 「한국 기독교와 역사」 23 (2005); 한화룡. 『뺨인가 이마인가?』. 서울: 포앤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