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제, 존 클러렌스

John Clarence Klose
1918-1924. 11. 11
1892. 09. 09-1973. 11. 07
미국 선교사, 출판부 서기
구치흔(具致欣)
클로제는 1892년 9월 9일 위스콘신주 화이트홀(Whitehall, Wis.)에서 출생하였다. 미시간주 베리언스프링스에 있는 엠마누엘선교대학(EMC)에서 수학한 후에 일리노이합회에서 출판소 총무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1918년에 프레다 스웬슨(Freda Swenson)과 결혼한 후, 출판 사업을 위한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하였다.

  클로제는 오웬이 중국 남부미션으로 이주한 이듬해인 1918년에 그를 대신해서 한국대회(Korean Conference)의 출판부 책임을 맡았다. 1919년에는 개최된 조선합회(Chosen Union Mission) 제1회 총회에서 선교부와 출판부 서기에 임명되어 선교 활동을 진두지휘하였다. 특별히 그는 각 지역교회에 선교회를 조직하도록 추진하여 활발한 선교 활동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선교부 서기로서 각 지역을 다니면서 천막전도회를 인도하였는데, 1921년에는 9월 2일부터 10월 2일까지 한달 동안 군산지역에서 천막전도회를 이끌었다. 1924년에는 함흥에서 특별 천막전도회를 개최하였다.

  클로제는 출판부 서기로서 문서전도 활동도 지도하였다. 1921년에는 본격적으로 매서 사업(문서 전도)을 강조하였는데, 조선합회 산하 3개 대회와 미션(서선대회, 중선미션, 남선미션)을 순회하여 문서 전도 사업을 독려하였다. 그는 1921년 9월에 매서 사업(문서 전도) 강조주간인 “대매서주간”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1922년에 『권서전도자』를 번역 출판하여 출판부 사역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클로제의 지도 아래 1923년에 서선대회와 중선미션 연합 문서전도인 수양회(경성 회기리 교회당), 남선미션 권서인 수양회(경산), 황주와 신천 지역에서의 연합 매서운동, 1924년에 함흥에서 권서활동 등을 전개하는 등 문서전도 활동에 헌신하였다.

  클로제는 1924년 11월 11일에 안식년으로 귀국하였고, 그를 대신해서 1925년 조선합회 제4회 총회에서 바쓰(H. J. Bass, 배희제) 선교사가 선교부 서기로 사역하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 클로제는 사우스이스턴연합회와 플로리다합회에서 가정 선교(Home Missionary)와 안식일학교부 서기로 봉사하였다. 그후에 그는 켄터키주 코빙턴(Covington, Kentucky), 테네시주 파리(Paris, Tennessee), 아이오와주 수 시티(Sioux City, Iowa), 미시간주 앤아버와 머스케콘(Ann Arbor and Miskengon, Michigan)에서 지역교회 목사로 사역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 은퇴할 때까지 미시간주 포우(Paw Paw, Michigan)교회에서 목회자로 일했다. 은퇴 후에 가족들과 함께 말년을 지내다가 1972년 11월 7일에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Riverside, Calif.)에서 사망했다.

[참고자료] Review and Herald, January 4, 1973, 31; J. M. Johnson, “The Worker’s Institute in Korea,” Review and Herald, September 5, 1918, 19; 『교회지남』, 1923년 7월호, 5; 김재신. 『한국 기독교문화의 일 연구』. 서울: 공익문화사, 1969; 오만규. 『한국선교100년사』. 서울: 시조사, 2010; 이영린. 『한국재림교회사연구』. 서울: 선명문화사,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