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스는 1887년 1월 8일에 뉴욕주 윌리엄스타운(Williamstown, N.Y.)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3년 여름에 뉴욕주 로마(Rome, N.Y.)에 있는 뉴욕합회 출판소에서 출판사역을 하기 시작했다. 4년 후에 그는 워싱턴 D.C.로 옮겨, 그곳에 있던 위싱턴외국선교신학교(Washington Foreign Mission Seminary)에서 학업을 하면서 그곳의 출판소에서 일했다.
그후 한국 출판선교에 대한 부름을 받아 1912년 11월에 서울에 있는 인쇄소의 총무 및 한국미션(Korean Mission)의 서기 및 회계로 선교사의 사역을 하게 되었다. 밀스는 출판소에서 총무로 사역하면서 김명길, 사나스 나가토리(Sanas Nagatori) 등의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 교회의 지도자들로 양육하였다. 1913년 2월에는 회기동에 미션 본부 및 선교사 사택이 완공된 후에 하나의 사택으로 입주하여 출판 사업과 미션 본부 사역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그는 병에 걸려 1914년 8월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1년 정도 파라다이스 밸리요양원에서 요양을 하였고, 그 후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윌리엄 바네스(William Barnes) 가족과 함께 낙농일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한국 선교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밀스는 그곳에서 끝내 독감에 걸려 1918년 12월 10일 사망하였다.
[참고자료] H. A, Vandeman, “Franklin F. Mills,” Review and Herald, February 6, 1919, 31; C. L. Butterfield, “Dedication service at Seoul, Korea,” Review and Herald, April 17, 1913, 13; Review and Herald, October 31, 1912; September 17, 1914.